성공적인 오픈 소스 프로젝트인 fetchmail을 분석한다. 이 프로젝트는 리눅스의 역사에 의해 제시된 놀라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이론을 신중하게 테스트하기 위해 실행된 것이다. 이 이론들을 두 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개발 스타일의 용어들로 논할 것이다. 두가지 스타일이란 상업용 소프트웨어의 ``성당'' 모델과 리눅스 세계의 ``시장'' 모델이다. 이 모델들은 소프트웨어 디버깅 작업의 본질에 대한 서로 대립되는 가설들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 리눅스의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많은 사람이 있다면, 찾을 수 없는 버그란 없다'' 는 일관된 주장을 펴고, 이기적인 에이전트의 자가수정 시스템과의 생산적인 비유를 제시한 다음, 소프트웨어의 미래를 위해 이 통찰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탐구로 마무리짓는다.
차례
1. 성당과 시장
2. 메일은 배달되어야만 한다.
3. 사용자가 있다는 것의 중요성
4. 일찍, 그리고 자주 발표하라.
5. 장미가 장미다우려면
6. Popclient가 Fetchmail이 되다.
7. Fetchmail 의 성장
8. Fetchmail에서 배울 점
9. 시장 스타일의 개발에 필요한 선행조건들
10.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사회적 문맥
11. 감사의 글
12. 읽어볼 만한 글들
13. 후기 : 넷스케이프가 시장 스타일을 받아들이다!
14. 버전과 변경 이력
1. 성당과 시장
리눅스는 파괴적이다. 파트타임으로 해킹을 하면서 인터넷이라는 가느다란 선만으로 연결되어 있는 전세계 수천명의 개발자들에 의해 세계적인 수준의 운영체제가, 마치 마술처럼 만들어질 수 있었으리라고 누가 5년 전에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분명 상상하지 못했다. 1993년 초, 리눅스가 내 레이다 화면에 잡혔을 때 나는 이미 유닉스와 오픈 소스 개발을 10년 동안 해오고 있었으며 1980년대 중반에 GNU 에 공헌한 첫 번째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나는 네트워크 상에 꽤 많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발표했고,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몇몇 프로그램을 개발중이거나 공동개발하고 있었다. (네트핵, Emacs VC 와 GUD 모드, xlife, 등등) 나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 성당과 시장
- 메일은 배달되어야만 한다.
- 사용자가 있다는 것의 중요성
- 일찍, 그리고 자주 발표하라.
- 장미가 장미다우려면
- Popclient가 Fetchmail이 되다.
- Fetchmail 의 성장
- Fetchmail에서 배울 점
- 시장 스타일의 개발에 필요한 선행조건들
-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사회적 문맥
- 감사의 글
- 읽어볼 만한 글들
- 후기 : 넷스케이프가 시장 스타일을 받아들이다!
- 버전과 변경 이력
## 성당과 시장
Linux is subversive. Who would have thought even five years ago (1991) that a world-class operating system could coalesce as if by magic out of part-time hacking by several thousand developers scattered all over the planet, connected only by the tenuous strands of the Internet?
리눅스는 파괴적이다. 파트타임으로 해킹을 하면서 인터넷이라는 가느다란 선만으로 연결되어 있는 전세계 수천명의 개발자들에 의해 세계적인 수준의 운영체제가, 마치 마술처럼 만들어질 수 있었으리라고 누가 5년 전에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Certainly not I. By the time Linux swam onto my radar screen in early 1993, I had already been involved in Unix and open-source development for ten years. I was one of the first GNU contributors in the mid-1980s. I had released a good deal of open-source software onto the net, developing or co-developing several programs (nethack, Emacs's VC and GUD modes, xlife, and others) that are still in wide use today. I thought I knew how it was done.
나는 분명 상상하지 못했다. 1993년 초, 리눅스가 내 레이다 화면에 잡혔을 때 나는 이미 유닉스와 오픈 소스 개발을 10년 동안 해오고 있었으며 1980년대 중반에 GNU 에 공헌한 첫 번째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나는 네트워크 상에 꽤 많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발표했고,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몇몇 프로그램을 개발중이거나 공동개발하고 있었다. (네트핵, Emacs VC 와 GUD 모드, xlife, 등등) 나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Linux overturned much of what I thought I knew. I had been preaching the Unix gospel of small tools, rapid prototyping and evolutionary programming for years. But I also believed there was a certain critical complexity above which a more centralized, a priori approach was required. I believed that the most important software (operating systems and really large tools like the Emacs programming editor) needed to be built like cathedrals, carefully crafted by individual wizards or small bands of mages working in splendid isolation, with no beta to be released before its time.
리눅스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많은 부분을 뒤집어 버렸다. 몇 년 동안이나 나는 작은 도구, 빠른 프로토타이핑, 그리고 진화적인 프로그래밍을 여러 해 동안 유닉스의 복음으로 설교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종류의 매우 중요한 복잡성이 있어서 거기에는 더 집중되고 선험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나 Emacs 같이 대단히 커다란 도구들)는 성당을 건축하듯이, 즉 찬란한 고독 속에서 일하는 몇 명의 도사 프로그래머나 작은 그룹의 뛰어난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만들어지고 때가 되기 전에 발표되는 베타버전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Linus Torvalds's style of development—release early and often, delegate everything you can, be open to the point of promiscuity—came as a surprise. No quiet, reverent cathedral-building here—rather, the Linux community seemed to resemble a great babbling bazaar of differing agendas and approaches (aptly symbolized by the Linux archive sites, who'd take submissions from anyone) out of which a coherent and stable system could seemingly emerge only by a succession of miracles.
리누스 토발즈의 개발 스타일은 - 일찍, 그리고 자주 발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위임하고, 뒤범벅이 된 부분까지 공개하는 그런 스타일 - 나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고요하고 신성한 성당의 건축방식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리눅스 공동체는 서로 다른 의견과 접근방법이 난무하는 매우 소란스러운 시장같았다. (리눅스 아카이브 사이트가 이것을 적절히 상징하고 있다. 이곳에는 누구나 파일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시장바닥에서 조리있고 안정적인 시스템이 나온다는 것은 거듭되는 기적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The fact that this bazaar style seemed to work, and work well, came as a distinct shock. As I learned my way around, I worked hard not just at individual projects, but also at trying to understand why the Linux world not only didn't fly apart in confusion but seemed to go from strength to strength at a speed barely imaginable to cathedral-builders.
시장 스타일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분명 충격이었다. 리눅스 공동체에 익숙해져 가면서 나는 개개의 프로젝트에 열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왜 리눅스 세계가 공중분해 되지도 않고 성당건축가들이 상상하기도 힘든 속도로 계속해서 강해지는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By mid-1996 I thought I was beginning to understand. Chance handed me a perfect way to test my theory, in the form of an open-source project that I could consciously try to run in the bazaar style. So I did—and it was a significant success.
1996년 중반에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 이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완벽한 기회가 오픈 소스 프로젝트의 형태로 찾아왔다. 여기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시장 스타일을 시도해 볼 수 있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This is the story of that project. I'll use it to propose some aphorisms about effective open-source development. Not all of these are things I first learned in the Linux world, but we'll see how the Linux world gives them particular point. If I'm correct, they'll help you understand exactly what it is that makes the Linux community such a fountain of good software—and, perhaps, they will help you become more productive yourself.
이 글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그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효과적인 오픈 소스 개발에 대한 격언들을 제시할 것이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리눅스 세계에서 처음 배운 것은 아니지만 리눅스 세계는 이 격언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만일 내가 옳다면, 독자들은 이 격언들로부터 리눅스 공동체가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독자들 자신도 더 생산적으로 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메일은 배달되어야만 한다.
1993년에 나는 펜실베니아 주, 서 체스터(West Chester) 시의 자그마한 무료 ISP인 체스터 카운티 인터링크 (Chester County InterLink : CCIL) 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CCIL 의 공동설립자였으며 우리만의 멀티유저 게시판 소프트웨어를 작성했다 - locke.ccil.org에 telnet 으로 접속하면 볼 수 있으며 지금은 19회선으로 3000 여명의 사용자를 지원한다) 이 일 덕분에 나는 하루 24시간 내내 CCIL의 56K 회선을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을 수 있었다 -- 사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 메일은 배달되어야만 한다.
Since 1993 I'd been running the technical side of a small free-access Internet service provider called Chester County InterLink (CCIL) in West Chester, Pennsylvania. I co-founded CCIL and wrote our unique multiuser bulletin-board software—you can check it out by telnetting to locke.ccil.org. Today it supports almost three thousand users on thirty lines. The job allowed me 24-hour-a-day access to the net through CCIL's 56K line—in fact, the job practically demanded it!
1993년에 나는 펜실베니아 주, 서 체스터(West Chester) 시의 자그마한 무료 ISP인 체스터 카운티 인터링크 (Chester County InterLink : CCIL) 에서 기술적인 측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CCIL 의 공동설립자였으며 우리만의 멀티유저 게시판 소프트웨어를 작성했다 - locke.ccil.org에 telnet 으로 접속하면 볼 수 있으며 지금은 19회선으로 3000 여명의 사용자를 지원한다) 이 일 덕분에 나는 하루 24시간 내내 CCIL의 56K 회선을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을 수 있었다 -- 사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I had gotten quite used to instant Internet email. I found having to periodically telnet over to locke to check my mail annoying. What I wanted was for my mail to be delivered on snark (my home system) so that I would be notified when it arrived and could handle it using all my local tools.
그래서 나는 바로바로 배달되는 인터넷 이메일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는데 몇가지 복잡한 이유들로 인해 내 집의 컴퓨터 (snark.thyrsus.com) 과 CCIL 사이에 SLIP 연결을 하기가 꽤 힘들었다. 마침내 성공하고 나자, 주기적으로 locke 에 접속해 메일이 왔는지 체크해 보는 것이 매우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메일이 snark 로 배달되어 도착하는 즉시 내가 그것을 알 수 있고, 내 컴퓨터의 도구들을 이용해 메일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The Internet's native mail forwarding protocol, SMTP (Simple Mail Transfer Protocol), wouldn't suit, because it works best when machines are connected full-time, while my personal machine isn't always on the Internet, and doesn't have a static IP address. What I needed was a program that would reach out over my intermittent dialup connection and pull across my mail to be delivered locally. I knew such things existed, and that most of them used a simple application protocol called POP (Post Office Protocol). POP is now widely supported by most common mail clients, but at the time, it wasn't built in to the mail reader I was using.
sendmail을 이용해 단순히 포워드시키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내 개인 컴퓨터가 항상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정적인 IP 어드레스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SLIP 연결이 되면 내 메일을 가져와 내 컴퓨터 안에서 배달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그런 프로그램이 몇 개 있었고, 대부분은 프로토콜로 POP(Post Office Protocol)을 사용했다. 물론, locke 의 BSD/OS 운영체제에는 POP3 서버가 포함되어 있었다.
I needed a POP3 client. So I went out on the Internet and found one. Actually, I found three or four. I used one of them for a while, but it was missing what seemed an obvious feature, the ability to hack the addresses on fetched mail so replies would work properly.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POP3 클라이언트였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뒤져 하나를 찾아냈다. 사실 서너개를 찾아내긴 했다. 잠시동안은 pop-perl을 사용했지만 기본적인 기능이 빠져 있었다. 가져온 메일에서 발신인의 주소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The problem was this: suppose someone named `joe' on locke sent me mail. If I fetched the mail to snark and then tried to reply to it, my mailer would cheerfully try to ship it to a nonexistent `joe' on snark. Hand-editing reply addresses to tack on <@ccil.org> quickly got to be a serious pain.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locke 의 사용자 중에 `joe' 라는 사람이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해보자. snark 로 메일을 가져와서 그 메일에 답장을 하려고 하면 메일 프로그램은 snark 에는 있지도 않은 `joe' 에게 답장을 보내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손으로 `@ccil.org'를 답장 받는 사람의 주소 뒤에 붙여주어야 했는데, 이것은 곧 매우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This was clearly something the computer ought to be doing for me. But none of the existing POP clients knew how! And this brings us to the first lesson:
이런 일은 분명히 컴퓨터가 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있는 POP 클라이언트들 중에서는 어느것도 이 일을 해주지 못했다. 여기에서 첫 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Every good work of software starts by scratching a developer's personal itch.
1. 모든 좋은 소프트웨어는 개발자 개인의 가려운 곳을 긁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very good work of software starts by scratching a developer's personal itch)
Perhaps this should have been obvious (it's long been proverbial that ``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 but too often software developers spend their days grinding away for pay at programs they neither need nor love. But not in the Linux world—which may explain why the average quality of software originated in the Linux community is so high.
명확해 보이는 교훈이긴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지 않은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너무나 자주, 단지 돈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리눅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 아마도 이것이 왜 리눅스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의 평균적인 품질이 그렇게나 좋은지를 설명해줄 것이다.
So, did I immediately launch into a furious whirl of coding up a brand-new POP3 client to compete with the existing ones? Not on your life! I looked carefully at the POP utilities I had in hand, asking myself ``Which one is closest to what I want?'' Because:
그래서 내가 이미 있는 POP3 클라이언트들과 경쟁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곧바로 코딩하기 시작했을까? 천만에. 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POP 유틸리티들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프로그램이 어느 것일까?'' 그 이유는
2. 좋은 프로그래머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지 안다. 위대한 프로그래머는 어떤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야 할 지 (그리고 재사용해야 할 지) 안다. (Good programmers know what to write. Great ones know what to rewrite(and reuse))